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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의 역사

굿이어의 가황법과 인조고무의 탄생


고무는 오래 전부터 사용되어 왔지만, 15세기 말에야 유럽에 전래되었다. 프리스틀리는 1770년에 고무를 지우개로 사용했고, 매킨토시는 1823년에 고무로 우비를 만들었다. 미국의 발명가 굿이어는 1839년에 가황법으로 인조고무를 개발한 후 1844년에 특허를 받았다. 1898년에는 굿이어 타이어 및 고무 회사가 설립되어 가황법을 바탕으로 타이어를 제조하기 시작했다. 1920년대에는 고무의 과학적 원리가 규명되었으며, 1930년에는 합성고무가 세계 최초로 상업화되기에 이르렀다.

오늘날 가장 널리 사용되는 유기소재로는 고무를 들 수 있다. 고무에는 자연 상태에서 얻어지는 천연고무와 인공적으로 만들어지는 인조고무가 있다. 인조고무를 만드는 방법에는 천연고무에 다른 화학물질을 추가하는 방법과 몇몇 화합물을 합성하여 고무를 만드는 방법이 있는데, 후자는 합성고무로 불린다. 이 중에서 기술의 영역에 해당하는 것은 합성고무를 포함한 인조고무이다. 기술은 인공물(artifact), 즉 인간이 만든 물체를 대상으로 삼기 때문이다. 고무가 기술의 영역으로 진입하는 데에는 찰스 굿이어(Charles Goodyear, 1800년~1860년)의 역할이 컸다. 그의 이름은 오늘날에도 굿이어 타이어(Goodyear tire)를 통해 계속 남아 있다.











옛날 사람들은 고무를 어디에 썼을까?


인류가 고무를 사용한 역사도 3,500년이 넘는다. 기원전 1600년경에 중앙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은 고무나무에서 추출한 유액(乳液)을 말려 사용했다. 그것은 고고학적 유물에 의해 확인된 사실이지만, 당시 고무의 용도가 무엇이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이어 기원전 500년경 이집트에서는 아카시아 고무에서 추출한 코미(Komi)를 사용했는데, 그것은 오늘날에도 사용되고 있는 아라비아고무(gum Arabic)의 기원에 해당한다. 이집트 사람들은 고무의 추출액을 접착제로서만 아니라 미라의 방부처리에도 사용했다고 한다. 유럽 사람들이 고무를 접한 것은 15세기 말에 있었던 일로 알려져 있다. 신대륙을 발견한 것으로 유명한 콜럼버스 (Christopher Columbus)는 1493년에 서인도제도로 두 번째 항해를 떠났다. 아이티 섬에 머무는 동안 콜럼버스 일행은 원주민들이 파라고무나무(Hevea brasiliensis)의 유액으로 만든 공을 가지고 게임을 하는 것을 보았다. 당시 유럽에서는 실을 감아서 만든 공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아이티 원주민들이 사용하는 공은 유럽 공에 비해 더욱 가볍고 높이 튀어 올랐다. 이후에 파라고무나무에서 나오는 유액은 라텍스(latex)로 불렸다.








지우개와 우비에 사용된 천연고무


콜럼버스 일행을 통해 유럽에 고무가 전래되었지만, 18세기가 되어서도 별다른 상품 가치가 없었다. 몇몇 사람들이 고무에 대한 실험을 하는 가운데 1770년에 영국의 화학자 프리스틀리 (Joseph Priestley)는 고무의 새로운 용도를 알아냈다. 그는 고무가 “종이에 연필로 쓴 자국을 지워버리는 목적에 매우 적합하다.”고 지적한 후 한 변이 3센티미터인 입방체가 “값은 3실링인데 몇 해 동안 쓸 수 있을 것이다.”고 평가했다. 오늘날 고무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인 러버(rubber)도 ‘문지르다’를 뜻하는 럽(rub)에서 유래되었다. 1783년 프랑스에서는 고무가 하늘을 나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 당시에 프랑스의 과학자 샤를(Jacques Charles)이 수소로 작동하는 열기구를 제작하면서 가스가 새지 않도록 고무로 칠한 천을 사용했던 것이다. 1803년에는 세계 최초의 고무공장이 파리에 세워졌다. 그 후 고무의 용도는 의료 기구에 사용되는 고무관, 옷을 졸라맬 때 쓰는 고무띠, 방수 기능을 가진 고무구두 등으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이어 1823년에는 영국의 화학자 매킨토시(Charles Macintosh)가 인도산 천연고무로 우비(raincoat)를 만들었다. 두 장의 천 사이에 천연고무를 발라 열로 압착시키는 방식이었다. 매킨토시의 우비는 훌륭하게 빗물을 막았기 때문에 빗속에서 작업하는 사람들의 대표적인 옷감이 되었다. 이것이 영국의 레인코트 전문점 ‘매킨토시(Mackintosh)’의 유래이며, 매킨토시는 영국에서 레인코드의 대명사로 불릴 정도로 유명해졌다. 원래 매킨토시의 영어 철자에는 k가 없었는데, 2000년대 초에 들어갔다고 한다.











고양이 덕분에 탄생한 고무 가황법


천연고무를 넘어 인조고무의 시대를 연 사람은 미국의 발명가 굿이어였다. 1839년 어느 날, 굿이어는 고무에 대한 실험을 하다가 고무덩어리를 실험실 책상 위에 두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식사를 마치고 실험실에 돌아왔을 때 고양이 한 마리가 그의 책상 위에서 고무덩어리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굿이어가 고양이를 쫓아내려고 하자 고양이는 책장 위에 있던 캔 하나를 뒤집어엎으면서 문틈을 통해 도망쳤다. 캔의 내용물이 고무덩어리 위에 쏟아졌고 고무는 흰 가루로 범벅이 되었다. 오전 내내 공들여 만든 고무덩어리가 무용지물이 되자 너무 화가 난 굿이어는 옆방에서 기웃거리던 고양이를 향해 고무덩어리를 집어 던졌다. 고양이는 다시 도망을 쳤고 고무덩어리는 난로 위에 떨어졌다. 굿이어는 난로의 열에 그을린 고무덩어리를 바라보다가 깜짝 놀랐다.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끈적거리기만 하던 고무덩어리가 마치 살아있기라도 한 듯 탄력이 생겼고 광택까지 나는 것이 아닌가! 곧바로 실험실 책상으로 돌아온 굿이어는 캔의 이름표를 보았다. 분말유황이었다. 고무와 분말유황의 조합은 그가 이전에도 시도했지만, 그것을 가열하는 작업은 생각지도 못했다. 굿이어는 천연고무, 유황, 가열의 조합에서 힌트를 얻어 가황고무를 만드는 실험에 몰두했다. 그 결과 천연고무를 안정화시키는 적당한 온도와 가열시간, 고무와 유황의 비율을 완벽하게 결정했다. 이를 바탕으로 굿이어는 1844년에 가황법(vulcanization, 불의 신인 ‘불칸’의 이름을 땄다)으로 특허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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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어에 남겨진 이름


굿이어는 가황법을 개발했지만 그것으로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했다. 가황법은 비교적 간단한 기술이었기 때문에 쉽게 모방될 수 있었다. 굿이어는 특허 소송을 걸었지만 소송은 8년이나 지루하게 계속되었다. 곧이어 그는 빚을 내어 사업을 시작했지만 그것마저도 신통하지 않았다. 결국 굿이어는 감옥을 들락거리는 신세가 되었고 말년을 쓸쓸하게 보냈다. 그는 죽기 직전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반드시 나의 시대가 올 것이다. 그때를 위해 가황고무를 계속 발전시켜라.” 1898년에는 굿이어의 이름을 딴 회사가 설립되었다. 세이버링(Frank Seiberling)이 오하이오 주 아크론에 설립한 굿이어 타이어 및 고무 회사(Goodyear Tire & Rubber Company)였다. 그 회사는 굿이어의 가황법을 바탕으로 타이어를 만들어 판매했다. 굿이어 타이어는 처음에 자전거에 사용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자동차 업체에 공급되기 시작했다. 1910년대에 자동차 산업이 번성하면서 굿이어 사는 세계 자동차 타이어 시장의 약 50%를 점유하기도 했다. 굿이어의 예언대로 그의 시대가 오기는 했지만, 그것은 그가 죽고서 50년이나 지난 후의 일이었다.오늘날에도 고무는 자동차 타이어로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다. 만약 자동차 타이어가 고무가 아니라 나무나 철로 되어 있다고 생각해 보라. 도로가 조금만 울퉁불퉁해도 자동차 내부가 심하게 흔들릴 것이다. 승차감이 나쁠 뿐만 아니라 차량의 기기나 짐이 파손되는 일도 발생할 것이다. 고무가 없었더라면 자동차가 운송수단으로 널리 보급되지 않았을 런지도 모른다. 이처럼 고무와 자동차는 서로가 서로를 강화하는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합성고무 시대의 개막


굿이어의 가황고무 다음에 등장한 고무는 합성고무였다. 1907년에 독일의 화학자 호프만(Fritz Hofmann)은 최초의 합성고무인 폴리이소프렌(polyisoprene)을 인공적으로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 폴리이소프렌은 천연고무와 성분이 거의 비슷했기 때문에 인류는 더 이상 천연고무에 의존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하지만 호프만이 개발한 합성고무는 품질이 떨어지고 가격도 비쌌기 때문에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다. 1920년대에는 고분자화학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고무와 같은 중합체(polymer)에 대한 과학적 원리도 규명되기 시작했다. 고무를 구성하는 최초 단위인 이소프렌(isoprene)은 5개의 탄소로 이루어져 있다. 단위체(monomer) 양 끝에서 이중결합을 구성하는 탄소(1, 4번)는 다른 단위체의 탄소와 결합하고, 그 결과 중간 탄소(2, 3번) 사이에 새로운 결합이 형성된다. 메틸기(CH3-)와 수소(-H)가 이중결합을 중심으로 같은 방향으로 결합하면 시스형 이소프렌이 형성되며, 메틸기와 수소가 서로 대각선 방향에 위치한 형태로 결합하면 트랜스형 이소프렌이 형성된다. 시스 결합을 한 고무의 탄성은 트랜스 결합을 한 고무의 탄성보다 크다.세계 최초로 상업화에 성공한 합성고무는 네오프렌(neoprene)이었다. 그것은 미국의 듀폰 사에 근무하던 캐러더스(Wallace Carothers)에 의해 1930년에 개발되었다. 네오프렌은 이소프렌의 메틸기 위치에 염소 원자가 치환된 클로로프렌(chloroprene)으로 합성한 소재에 해당한다. 네오프렌은 열에 강하면서도 유기 용매에 잘 녹지 않아 자동차의 벨트, 연료의 고무호스, 패킹용 오링(O-ring) 등에 널리 사용된다. 1986년에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폭발한 이유가 오링이 탄성을 잃었기 때문이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참고문헌


아서 셧클리프 외(조경철 옮김), 『청소년을 위한 케임브리지 과학사 4(기술 이야기)』 (서해문집, 2006년). 야마다 히로타카(김자영 옮김), 『천재과학자들의 유쾌한 발상』 (함께, 2006년). 마리 노엘 샤를(김성희 옮김), 『세상을 바꾼 작은 우연들』 (윌컴퍼니, 2014년). 오진곤, 『화학의 역사』 (전파과학사, 1993년).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고무 - 굿이어의 가황법과 인조고무의 탄생 (세상을 바꾼 발명과 혁신, 송성수, 생각의힘)